2023년 01월 02일 05:07

[알쓸₿잡 60회] 암호화폐에 법치주의가 필요한 이유…그리고 PoW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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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법치주의가 중요한 이유

얼마전, 2022년 2월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고 김정주 넥슨 회장 소유의 거래소 계정에서 약 85억원 상당의 코인이 탈취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범인은 전문 해킹 범죄조직 장 모 씨 일당이며 이들은 가입자를 식별하는 유심을 불법 복제해 김 전 회장 계좌를 해킹한 뒤 10일간 총 27차례에 걸쳐 코인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 모 씨는 사망한 김 전 회장의 계정에서 거래가 발생한 것을 수상히 여긴 거래소측의 신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6년 형이 선고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탈취된 85억 원은 아직 환수되지 못했다.

뉴스를 천천히 읽어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장 모 씨는 법원에서 6년형을 선고받는 동안 판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탈취한 85억 원 대비 6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히 견딜만 한지, 아니면 버리기 아까운지 따져보지 않았을까. 사람마다 도덕적 판단 기준은 다르겠지만 현실을 직시해 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85억 원은 평생 한번 만져볼까 말까 한 큰 돈이다. 평생도 아니고 6년 안에 85억 원을 벌 수 있는 확률은 그보다 훨씬 더 낮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장 모 씨는 자신이 받은 판결에 지금 만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탈취한 85억 원을 어딘가에 잘 숨겨놓고 6년만 버티면 풍요롭고 안락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분명 법의 심판을 받았는데도 오히려 범죄자가 결과에 만족스러워 하며 두 발 쭉뻗고 지낼 수 있다면 누군들 범죄를 멀리할까. 대한민국이 사기 공화국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지금 우리의 사법 시스템은 범죄, 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범죄에 너무나도 관대하다. 대한민국의 솜방망이 처벌은 미국과 자주 비교된다. 미국에서는 금융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엄격해 범죄자에게 수백년씩 징역형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범죄자가 선뜻 행동에 나서기가 어렵다. 아무리 큰 돈을 벌어 숨겨 놓더라도 그때문에 평생 감옥에 갇혀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디지털 세상의 문제

대한민국보다 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 솜방망이인 곳이 디지털 세상이다. 온라인에서는 수백만개의 가짜 계정과 스팸 메세지로 타인을 공격해도 아무런 비용도 발생하지 않고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공격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는 ‘무한대’이고 그에대한 리스크는 ‘제로’인 세상이다. 당연히 타인에 대한 사기가 판을 칠 수 밖에 없다.

웹사이트 분석 툴인 스파크토로(SparkToro)와 트위터 분석용 무료 툴인 팔로워웡크(Followerwonk)가 공동으로 트위터에 공개된 4만 건 이상의 계정을 분석해 그 결과를 정리했다. 그 결과 트위터에서 활동이 확인된 ‘활성 트위터 계정’ 중 19.42%가 스팸·가짜 계정으로 밝혀졌다. 트위터에서 만난 10명의 사용자 중 약 2명은 가짜이거나 스팸 계정이라는 뜻이다. 트위터 측은 하루에 100만건 이상의 가짜 계정들을 삭제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삭제되는 속도보다 새로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보니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내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커뮤니티(이하 단톡방)에는 이따금 스팸 계정이 들어와 광고 메세지를 잔뜩 뿌리고 나간다. 입장 코드를 설정하여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해놔도 소용이 없다. 심할 때는 도배된 광고 메세지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지우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다.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카카오 측에서 광고 계정을 삭제하는 알고리즘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트위터와 마찬가지로 삭제되는 계정보다 생성되는 계정 수가 더 많기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 가짜 계정을 보는 즉시 신고해봐야 최악의 경우 해당 계정이 정지되는게 전부다. 어차피 스팸 광고를 뿌리는 용도이므로 다시 만들면 된다.

트위터와 카카오톡 같은 SNS 플랫폼 입장에서 가짜 계정 현황을 속시원히 근절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SNS의 주된 수입원이 광고매출이기 때문이다. 진짜 계정이든 가짜 계정이든 광고 조회수와 클릭수만 늘면 더 많은 광고를 유치할 수 있으므로 플랫폼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올라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짜 계정들이 너무 늘어나면 실사용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가중되기 때문에 그냥 두고볼수도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보통 SNS 플랫폼들은 어느정도 선까지는 가짜 계정과 스팸성 광고 메세지가 늘어나는 것을 용인하다가 실사용자들의 불만이 슬슬 터져나온다 싶을때쯤 가짜 계정들을 색출하여 삭제하고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요새는 AI(인공지능)까지 가짜 계정 생성에 활용되는 추세다. AI 기술은 가짜 계정 색출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AI는 자가학습 능력이 있기때문에 스팸 봇을 감지하기 위해 플랫폼 측에서 만든 패턴을 학습하여 그것을 회피하는 스팸 전략을 만들어낸다. 플랫폼 측에서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없는 가짜 계정은 진짜 큰 문제다. 가짜 계정은 광고 조회수와 클릭수는 높여주지만 결국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광고주 입장에서 광고비용을 낭비하는 셈이다. 그러면 광고 건수가 줄어들게 되고, 결국 플랫폼은 빠져나간 광고를 되찾기 위해 더 많은 가짜 계정을 용인하는 덫에 빠지는 것이다.

비트코인의 해결책

디지털 세상이 이렇게 무법천지인 근본적인 이유는 범죄에 대한 비용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은 곧 데이터 전송인데, 인터넷에서 데이터 전송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니 공격자는 수백만 건의 범죄를 저질러 모두 실패해도 아무런 리스크가 없는 것이다. 가짜 계정이 판치는 SNS는 거짓 투성이다. 팔로워 수, 좋아요 수, 댓글까지 사실상 꾸며진 정보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방식은 이러한 인터넷의 치명적 약점을 역사상 처음으로 해결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 위에 지어진 디지털 세상에서는 더 이상 데이터 전송이 무료가 아니다. 사용자가 데이터를 전송하려면 반드시 블록에 트랜잭션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블록에 데이터를 담기 위해선 블록을 생성하는 일을 대신 해주는 채굴 노드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채굴 노드가 행할 수 있는 수많은 공격 및 범죄행위 가능성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방지한 비트코인의 아름다운 디자인은 잠시 논외로 하자. 이 글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내용은 바로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시스템이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미래 인터넷의 모습이다. 만약 범죄자가 가짜 계정을 생성할때마다 범죄자 지갑에서 자동으로 10사토시씩 차감되게 한다면 어떨까. 현실세계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데이터 전송에 비트코인이 필요하므로 어느 사용자의 지갑에나 반드시 비트코인이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실계정이든 스팸계정이든 말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소정의 비트코인을 차감한다면 범죄자는 범죄에 대해한 이득이 충분한지를 따지게 되고 자연스레 범죄는 줄어들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법치주의가 범죄에 대한 처벌을 내려 사회질서를 유지하듯이, 디지털 세계에서는 비트코인의 작업증명이 범죄 행위에 비용을 매겨 범죄 유인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마이클 세일러가 비트코인을 ‘디지털 에너지의 보존(Conservation of digital energy)’라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가령 비트코인 기반 SNS에서는 계정을 만들 때, 메세지를 보낼 때, 타인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를 때 모두 소정의 ‘사토시’ 를 내야한다. 트위터에서는 수만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도 비용이 제로였기 때문에 공격자가 잃을게 없지만, 이제 디지털 공격자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불해야한다.

현실 세계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수사기관이 체포하고 재판에 넘겨 사법부가 심판을 내린다. 인간 행동에 이런 인과응보가 따르는 이유는 세상이 물리적인 에너지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범죄자가 밖에 있는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둘 사이의 철창, 즉 물리적 에너지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과 작업증명은 디지털 에너지다. 범죄 행위에 인과응보를 불러오는 에너지, 범죄자와 나 사이에 철창을 놓아주는 에너지, 디지털 세상을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에너지다. 비트코인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실현시킨 디지털 에너지 덕분에 인터넷은 더 정직하고 도덕적인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인과응보(영어로 consequence)가 존재하여 사용자들간에 질서가 형성되는 안정적인 인터넷. 웹 3.0이다.

웹 3.0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바꿀 메가 트렌드다. 사회 곳곳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 될수록 웹 3.0에 대한 수요는 커질 것이다. 다만 조심하자. 단순히 코인이나 블록체인이 웹 3.0이 아니다. 비트코인과 작업증명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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